최근 몇 년 동안 각 대학은 수시전형 중에서 학생부 전형의 비중을 올렸다. 2008년 이후로 거의 모든 지방 소재 대학이 논술고사를 보지 않아 학생부 전형은 높았지만 수도권 소재 대학마저 학생부 전형을 늘렸다. 정시비중은 급격하게 축소되었고 수시에서 크지는 않지만 논술전형도 줄였다.
각 대학이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학생부 전형을 늘린다고 발표하지만 정부의 압박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학생부 전형을 늘린 대학에 대해 상당한 규모의 지원금을 교부하고 논술 전형 등 다른 전형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면 규모를 줄이거나 고강도의 감사를 실시했다.
학생부 전형은 좋은 제도일 수 있다. 학생들이 학내에서 이루어지는 수업, 학생활동에 성실하게 참여하도록 하며 역동적인 공동체적 삶을 지향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
현실은 귤화위지다. 정부나 대학의 의도와 다르며 형식적 겉치레에 치우쳐 있다. 지난 몇 년간 학생부 전형이 확대되었지만 공교육이 정상화되고 사교육비 부담이 줄었다는 자료가 없다. 사교육비 규모는 학생부 전형이 확대되기 전에 연간 19조에서 20조에 달했는데 지금의 사교육비도 그 수준을 유지한다. 사교육비 규모에 큰 변화가 없다.
학생부 전형의 확대는 사교육비를 줄일 수 없다. 사교육비를 유지하거나 늘릴 수는 있지만 줄게 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평가요소는 내신 성적인데 학원, 과외에서 맞춤형 학습이 이루어진다. 각종 내신고사가 학교선생님들에 의해 출제되므로 교실수업만 충실하면 우수한 성적을 맞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그 이상의 심화된 예습과 복습이 학원에서 이루어진다. 사교육 의존도가 높을수록 더 좋은 내신 성적을 받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공교육 정상화에도 기여할 수 없다. 공교육의 목적은 타자와 공존적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지식, 규범 등을 습득함으로써 사회적 삶의 소양을 갖추도록 하는 데 있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학생들은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거나 타자의 주장에 대해 공감하는 윤리적 자세를 습득하기보다 창의적 체험이라는 명목으로 목표, 과정, 성과도 불분명한 양적인 활동에 치중하고 기록을 남기느라고 전전긍긍한다.
수많은 활동이 학생부에 기록되어 있지만 다수 학생의 활동은 유사하며 활동수행의 동기, 목표, 가치적 당위성에 대한 성찰적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쇼핑을 하듯이 많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피상적으로 섭렵하며, 수사의 미학이 곁들인 기록에 골몰하는 것이 지금의 학교 현장이다. 지금의 학생부 전형은 현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보다 현실에 추종하는 것이 더욱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가치를 은근히 암시한다. 이처럼 문제가 많아도 집권당을 비롯한 이 땅의 보수정치세력이 학생부 전형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 젊은 세대의 우민화를 통한 영구집권의 의도가 숨어있지 않을까 의심이 갈 정도이다.
교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학생부 전형만이 대입의 첩경이라고 학생들에게 강제한다. 내신 성적에 치중하라고 설득하고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전념하라고 한다. 과언일 수 있지만 다수의 교사들은 그것의 내용이나 교육의 본질에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지 않는다. 설득력 있는 근거나 당위적 가치를 제시하지 않고 오직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인간적 삶을 위해 프랑스, 독일, 북구유럽에서 당연시되는 교육과정인 논술전형에 대해 침묵하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심지어 논술전형이 고교교육과정을 넘는다거나 논술이 사교육비의 주범이라고 강변하던 그 많은 외침이 한 순간 사라진 것도 기이한 일이다.“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학생부 전형은 실체 없는 외피에 불과하다. 진짜 찐빵처럼 보이지만 단팥 없는 위장된 찐빵이다. 학생부 전형의 바탕은 교실수업에서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다양한 토론을 수반하도록 되어 있는데 논쟁적 토론이나 글쓰기는 찾아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학교의 지적공동체라는 위상은 흔들흔들하다.
학생부 전형의 확대와 관련해 지난 1월에 있었던 사건을 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이와 비슷한 사건은 학교 현장에서 드물지 않다.
1월 중순경에 1학년 학생이 교무실로 찾아왔다. 마키아벨리의 명저인 ‘군주론’을 읽었으니 학생생활기록부에 좋은 평가(?)를 써달라는 것이다. 첫 느낌은 놀라움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책이고 독서의 증거로‘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에 올린 독후감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 보면 그 학생을 영재로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다. 고1 학생이 동서의 석학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라고 불리는 군주론을 읽고 독후감까지 썼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후감이 치밀하고 명료하기까지 해서 지적 능력에 감탄을 아낄 수가 없었다. 매정하지만(?) 그 학생에게 써줄 수 없다고 했다.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전혀 답하지 못했고 독후감에도 난해한 구절이 상당했다. 학생은 서운한 눈치였다. 다른 모든 선생님들은 아무 말 없이, 형식적 절차만 갖추면 무조건 학생부에 기록을 남겨주는데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구나 그 학생은 소위 서울 소재의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사뭇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