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불황이 지속되면서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07-08년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국 경제성장률은 3% 미만으로 정체되어 있고, 그나마 경제 성장을 추동하던 중국도 작년에는 6% 대 성장률로 내려앉았다. 불황이 지속되면 소비·유통 물량이 줄고, 이를 선적할 배를 건조할 필요가 줄고, 조선업을 비롯해 수출산업 설비과잉이 문제가 된다. 당장 세계무역기구(WTO)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의 교역액은 2014년보다 11.8%나 줄었다.
이런 전 세계적인 위기에서 한국만 비켜갈 도리는 없다. 한국은 특히 대외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인 만큼 세계 경제 불황에 더욱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13대 수출 주력품목의 교역액은 지난 5년간 10% 가량 감소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율(소위 수출의존도)은 88.1%로 2014년 98.6%보다 10.5% 포인트 하락했다. 경제 위기의 파도는 한국 조선산업을 먼저 덮치고 있다.
한국 조선업 위기의 배경
2008년 이후 지속되는 세계적 차원의 불황을 일시적인 순환 위기로 접근하는 이들이 많다. 주식 곡선이 오르락내리락 하듯 한 고비를 넘기면 다시 호황기가 오리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주요국가에서 본원통화를 찍어내는 양적완화라는 비전통적인 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성장률 회복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유가하락 등 디플레이션이 문제가 되는 실정이다. 과잉축적에 따른 경제 위기, 즉 구조적인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이 더 적합해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수주 물량이 감소하는 상황인데도 이명박 정부는 재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해양플랜트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지정하고 5년간 5조 90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사진출처=나무위키.
전 세계 경제 불황이 닥쳐왔을 때, 당시 이명박 정부는 이를 저금리, 4대강 토목사업으로 돌파하면서 과잉축적된 자본에 대한 구조조정을 지연시켰다. 우선적으로 구조조정의 대상에 오른 조선업의 경우, 재벌들은 2010년 이후에도 설비를 확장하면서 수주량 증대를 위한 저가 수주 경쟁을 벌였다. 전 세계적으로 수주 물량이 감소하는 상황인데도 정부는 재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해양플랜트 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지정하고 5년간 5조 9000억 원을 쏟아 부었다. 해양플랜트는 바다에 매장된 석유, 천연가스 등의 해양 자원을 발굴ㆍ시추ㆍ생산하는 제반 사업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저유가 국면을 맞으면서 해양플랜트 산업은 경쟁력을 상실해버렸다. 셰일가스를 이용한 원유채굴의 생산단가가 낮아진 것도 해양플랜트 산업의 전망을 어둡게 만들었다.
정부와 재벌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눈앞의 이익만 좇아 무리한 설비증설을 강행했고, 이것이 현재 조선업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중국이 2010년대 초반부터 정부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시작한 것과도 대조적이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
현재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단지 자본의 술수라고만 보는 시각은 문제 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다. 호황기에 자본이 많은 부를 챙겨간 것이 사실이라면, 마찬가지 이유로 현재가 과잉설비/생산이자 경제위기 국면인 것도 사실이다. 자본이 잉여가치를 축적하면 축적할수록 이윤율은 저하하고 이 때문에 경제위기가 초래된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중심국의 경제 침체가 쉽사리 회복될 기미가 없어 저성장 경제위기는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재벌의 재산을 보호하고자 과잉설비/축적을 그대로 둔 채 위기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는 앞으로 더 거센 위기를 맞이하게 될 뿐이다. 쟁점은 구조조정의 책임을 누구에게 지우느냐에 있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기도 전, 올 상반기부터 거제도 조선소에서 밀려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 만 명에 이르고 있다. 칼바람이 불면서 현장에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노동조건도 열악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올해에만 8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다. 반면 삼성중공업에 삼성 재벌 일가가 출자해야한다는 요구에 삼성그룹은 이재용 개인재산 출자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한진해운 최은영 전 회장은 구조조정 자율협약 직전에 자신이 보유한 한진해운 주식을 팔아치운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 재벌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겠다며 배짱을 부리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노동조합
정부는 재벌의 편에 서서 노동자들에게 아무 소리 말고 쫓겨나가라고 강요하고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 과정을 수월하게 추진하기 위해 올해 초 소위 원샷법으로 불리는 기업활력제고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이 법이 시행되는 8월 이후에는 노동자 죽이기 구조조정을 더 광범위하게 시도할 것이다.
위기의 원인을 정확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해 자금을 지원하며 노동력을 쥐어짜는 것은 유동성 위기에서나 통할 법한 방책이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 인정하듯 설비 과잉이 문제되고 있고, 전 세계 물동량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조정은 정작 위기의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준다는 점에서 부도덕하고, 그것이 위기를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무능하다.
위기 해결의 첫 단추는 재벌 소유자와 경영자, 채권자에게 손실을 부담시키고, 사회적 지원을 받은 기업의 소유권을 사회화시키면서 산업구조 전반을 구조조정 하는 데 있다. 현재 저성장 위기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치부하고 단기적 처방만을 고민한다면 경제는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재벌의 책임을 묻는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글쓴이 강문식은]
민주노총 전북지역본부 교육선전부장입니다. 사회의 주요 쟁점들을 분석해 월1회 독자들과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