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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9:57:27

꼰대 테스트


... 편집부 (2016-08-22 09: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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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규홍)

오베라는 남자가 있었다. 자기가 세운 규칙과 원칙, 그리고 성실함으로 똘똘 뭉쳐있어 까칠하게만 보이는 사람. 그렇지만 그는 모든 면에서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아 마땅한 그런 삶을 살았다.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바쳐 한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했으며, 젊은 시절은 물론 나이가 먹은 후에도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과 이웃을 위해 헌신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두고 오직 한 사람만을 열렬히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다.
누가 뭐라든 그는 훌륭한 시민이자 성실한 노동자였고 사랑 앞에 무릎 꿇는 멋진 남편이었다. 그랬던 그가 말년에 자살을 시도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마음 둘 곳을 잃은 그가 선택한 방법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아내의 곁으로 가는 것이었다.
마음을 주고받을 친구와 이웃이 없다는 건 막연한 슬픔을 넘어 생과 사를 넘나들게도 하는 중대한 사건이 될 수도 있는가 보다. 언필칭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 그들은(나도 포함되지만 편의상 3인칭으로 하자.^^) 누구인가. 굳은 신념으로 오랜 시간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온 사람들이 아니던가. 후배들과 자손들에게 존경받아 마땅한 그들이 지금 꼰대라 불리며 ‘웬만하면 마주치기 싫은 존재’로 취급당하고 있다. 왜일까? 그들이 세상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 데나 똥을 싸는 고양이와 그 주인인 젊은 여자에게 오베는 상스런 욕을 섞어 격하게(?) 충고를 한다. 같은 마을에 사는 그 여인은 오베의 충고를 ‘말이 통하지 않는 늙은 꼰대의 지랄발광’ 쯤으로 해석한다. 운전이 서툴러 주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새로 이사 온 이웃의 젊은 부부가 보여주는 어설픈 행동들을 보며 오베는 ‘요즘 젊은것들’의 무능과 한심함을 한탄한다. 그러나 그 무능하고 한심한 젊은 부부의 열린 마음이 철벽 같고 얼음 같던 오베의 마음을 열게 될 줄이야.

오베는 도덕적인 사람이다. (노동현장에서 죽은 아버지의 임금이 너무 많이 들어왔다고 회사에 다시 돌려준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동네를 배회하며 아무 데나 똥을 싸대는 고양이의 주인과 고양이는 오베가 세운 도덕기준에 합의한 적이 없다. 아니 그 비슷한 과정도 없었다. 다시 말해 그 도덕기준은 오베와 그 비슷한 기준을 가진 사람에게나 적용이 될 뿐인 거다. 내 말이 분명히 옳은데 쟤들은 왜 내 말에 토를 달고 바락바락 대드는 걸까? 오베는 이런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다만 자기에게 대항하는 모든 이들을 인간이하의 상식을 가진 못된 것들로 간단히 치부하고 만다. 그러니 각자의 길은 계속 평행선이 될 수밖에.

모두에게는 자기가 살아온 이력에 따라, 문화에 따라, 그리고 지역에 따라 각각의 윤리적 기준이 있게 마련이고 그 기준은 존중되어야 한다. 가치관과 철학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분야가 아니니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 없다는 데는 다들 동의한다. 다만 서로가 협의해 맞춰나가야 하는 것이다. 불행한 우리의 꼰대들은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한다. 그러니 당연히 충돌이 일어나고 욕을 먹게 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을 당한다. 결국 꼰대라는 별명은 남이 붙여주는 게 아니라 자신이 붙인 꼴이 되는 거다. 자업자득이다.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잃어버린 공감능력을 되찾는 것이다. 이건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꼰대라 불리는 사람들도 젊은 시절 풋풋한 사랑의 경험과 기억은 다들 가지고 있다. 우리는 사랑을 할 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읽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저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뭘 생각하는지,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촉수를 뻗어 탐색을 하기도 하고 상대를 느끼기 위해 오감을 열기도 한다. 그러고도 답을 못 찾으면 연인의 눈을 바라보며 애타게 묻는다. 당신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어. 그걸 내게 알려주면 좋겠어. 그리고 조용히 연인의 답을 기다린다. 속은 좀 타겠지만.

쉰아홉 살의 오베보다 열한 살이나 많은 ‘벤’이라는 남자는 달랐다. 영화 ‘인턴’에서 일흔 살의 실습사원으로 출연한 로버트 드니로의 극중 이름이 벤이다. 그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손자뻘의 동료들과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나이를 무슨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다른 꼰대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스스럼없이 질문을 했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방적 충고보다는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따스한 위로와 격려로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을 대했다. 그 결과 동료들은 그를 진심으로 대하게 되었고 그에게 깊은 존경심까지 갖게 되었다. 나이를 넘어 진심어린 친구와 동료가 되는 법을 벤은 보여주었다.

이웃집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들의 진심어린 열린 마음 앞에 오베도 마음을 열게 되었고 결국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소통이란 자기의 것을 온전히 비우고 그 연후에 통하는 것이라 했다. 내 것이 비워지지 않고는 결코 통할 수도 공감을 할 수도 없다.
요즘 인터넷에 꼰대테스트라는 게 떠있다. 다들 한 번씩 테스트해 보시길. 재미여도 좋고 진심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어도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