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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투병 한솔케미칼 노동자 운명


... 문수현 (2016-08-03 15: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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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 한솔케미칼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던 이창언씨가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3일 새벽 끝내 운명했다. 부인과 세 살배기 딸, 그리고 이제 채 돌이 안 된 아들을 남긴 채였다.

이씨는 2012년 입사해 전극보호제, 세정제 등을 생산하는 공정에서 일해오던 중 2015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아왔으며, 지난 4월 28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서를 접수했었다.

민주노총전북본부와 지역 시민사회단체, 반도체노동자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등 21개 단체로 구성된 ‘전자산업 백혈병 산재 인정 촉구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이씨가 산재신청서를 접수한 4월 28일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근로복지공단은 백혈병 산재를 조속히 인정하고 전자산업 감시를 확대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뒤 회사는 산재신청인 측의 현장조사 참여를 거부했고,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 등 작업 현장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근로복지공단은 산재신청 접수 석 달이 지나도록 역학조사조차 시작하지 않아 산재 승인 절차가 마냥 지연되고 있었다.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피해노동자 이씨는 한솔케미칼에서 전극보호제, 세정제 등을 생산하는 공정에서 일했으며, 생산된 제품은 주로 삼성잔자로 남품돼 LCD 등 전자제품 생산과정에 쓰였다.

단체들은 또, 화학물질들을 혼합하는 작업과정에서 용액이 눈과 피부에 튀기도 하고 분진을 호흡기로 흡입하기도 했지만 피해노동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이 어떤 물질인지 무슨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 채 작업을 해왔으며, 안전장비와 안전교육 또한 충분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들은 특히, 한솔케미칼에서 발생한 백혈병 피해가 삼성과도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솔케미칼은 삼성전자에 제품을 대량으로 납품하던 관계였고, 삼성이 공장 증설계획을 발표하면 덩달아 주가가 뛰어오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노동자는 삼성이 요구하는 납품 물량을 맞추기 위해 월 100시간 이상 잔업·밤샘 노동을 하는 등 장시간 노동에 노출됐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전북본부는 이씨가 운명한 직후인 3일 성명을 내고 이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삼성전자의 납품업체로서 노동자의 안전을 무시하고 백혈병 발병 이후에도 그 책임을 회피한 회사와, 산재인정을 차일피일 미루며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근로복지공단에 (이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규탄했다.

또한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노동자의 건강권 쟁취를 위해 힘차게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며 “회사는 백혈병 발병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과 사회에 진심으로 사과하라. 근로복지공단은 고인의 산재를 조속히 승인하라. 정부는 전자산업 전반에 만연한 노동재해를 감시하고,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라”고 촉구했다.

다음은 지난 4월 28일 산재신청 기자회견 당시 발표됐던 고인의 편지.

“저는 2012년 1월 만28세의 나이에 전주 한솔케미칼사 전자재료팀에 입사하여 급성림프구성 백혈병이 발병 발견시기인 2015년 10월까지 근무한 이창언이라고 합니다. 당시 늦은 나이에 한솔케미칼 정규직이라는 대기업에 일할 수 있다는 부푼 마음을 안고 고향을 떠나 홀로 먼 타지로 일을 하기 위해 한솔케미칼에 입사하였습니다.

첫아이가 태어난 무렵부터 제품의 출하량이 급격히 늘었고 그 출하량을 맞추기 위하여 거의 자는 시간 외에는 일만 하였습니다. 생산량도 불규칙하여 작업자의 근무시간도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하루12시간 근무가 잦았고,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2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장시간 지속된 근무와 엄청난 작업량에 하루가 다르게 지쳐가고 있었고 둘째아이를 가진 지 4개월 만인 2015년 10월 중순부터 몸에 반점이 생기고 감기와 같은 증상으로 동네병원을 다니다 증세에 호전이 없었습니다. 피검사를 해보니 염증수치가 높아 회사에 쉬기를 요청하였으나 근무를 더 하라는 말에 그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종합병원에 입원하였고 하루 만에 염증수치는 더 많이 올라있었습니다. 입원 이틀 후 백혈병이 의심되니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하라는 말을 듣고 서울 성모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의사의 진단은 단순한 감기가 아니라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30대에 나이에 믿을 수 없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값비싼 치료비와 주기적인 검사 비용도 엄청난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세 살 된 딸과 이제 태어난 지 2주된 아들을 키워야 하는데 이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줘야 할 시기에 딸아이를 안기에도 힘이 떨어져 나도 모르게 힘에 부쳐 벌벌 떠는 제 손을 보고 있으니 속이 타들어만 갑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었을 뿐인데 아이들 그리고 와이프 보기가 정말 미안하고 미안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저는 저의 남은 인생의 절반이상을 그저 치료와 검사를 하며 일반인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이 살아야 된다는 것에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꼭 산재로 인정받고 일평생 안고 살아야하는 이 병에 대한 치료만이라도 마음 편히 하여 아이들과 그저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