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에 고덕산이 여럿이다.
덜 알려졌지만 진안과 임실에 고덕산이 있고(누군가는 전북의 금강이라 했다), 완주군에 같은 이름의 산이 있다. 윗동네에서 내려온 등산객이 완주 고덕산을 못 찾고 지나쳐 임실 고덕산까지 내려가 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고덕산(高德山)은 그대로 풀이하면 ‘높고 높은 산’이다. 덕(德)은 고어(古語)에서, 특히 산을 가리켜 높다는 뜻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 고덕산들 가운데 완주 고덕산은 일반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 고덕산 자락이 전주 들머리인 좁은목에 이르러 완만해지는 곳에 남고산성이 있다. 그리고 그 아랫마을이 산성마을이다.
전주 산성마을은 행정구역으론 동서학동에 들며, 전주교육대학교 뒤편에 있는 마을이다. 말 그대로 산성, 전주 남쪽의 성곽인 남고산성이 있는 마을이다.
남고산성은 남 전주의 고덕산과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네 봉우리를 둘러쌓은 산성으로, 남동쪽으로는 남원·고창으로 통하고 북쪽으로는 전주를 내려다보는 교통의 요지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이곳에 고덕산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조선 순조 13년(1813)에 성을 고쳐쌓고 남고산성으로 이름을 바꿨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일대기를 적은 석조 게시판. 대승사 가까운 곳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 남고사란 절이 유명하다. 전주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름의 절이다. 반면 대승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주시가 세운 안내판에는 대승사가 “고려 때 창건됐고, 지리적으로 남고산성과 좁은목에 접해있는 군사적 요충지여서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주둔지였다”고 한다.
나아가 “근처에 지금도 남아있는 15개의 돌무더기는 당시 전투(투석전)에 대비해 의병들이 쌓아놓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적고 있다. 이것만으론 ‘투석전 대비 돌무더기’ 이야기는 관광지 홍보를 위한 스토리텔링처럼 들리기도 한다. 필자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답사자들은 저 ‘15개 돌무더기’의 정체를 꼭 확인하기 바란다.
어쨌든 이곳이 왜란 당시 의병들이 매복한 장소인 것은 맞고, 견훤이 후백제를 세우고 5km가 넘는 산성을 쌓았으며, 특히 대승사 아래 주요한 외길목인 ‘좁은목’이 그때에도 군사·교통의 요충지였을 것도 확실하다.

(▲고덕산 대승사. 본래 사찰은 전란을 겪으며 모두 소실됐고, 사진 속 건물은 1935년에 새로 지은 암자. 현판에는 고덕산대승사라고 적혀 있다. 사진 오른쪽에는 요사채가 있다.)
고덕산 대승사는 전주 동서학동 산성마을 입구에서 300미터만 올라가면 나타난다. 좁은목 약수터에서 거리도 같다. 전주시가 언젠가는 문화유적지 관광 벨트로 묶어낼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은 도로 포장도 안 돼 있고, 두어 군데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그만큼 때가 덜 묻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어쩌면 뜻있는 유적답사자들이 가끔 찾는 곳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기도 한다.

(▲전주시가 사찰 입구에 세운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