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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9:57:27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아


... 편집부 (2015-05-20 13: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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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1일은 여성주의활동가그룹인 <언니네트워크>가 정한 제1회 '비혼인(比婚人)의 날'이다. 전북교육신문의 요청으로, 『지금 여기 페미니즘』의 저자이자 대안세계화운동그룹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연구원인 이유미씨가 기고문을 보내왔다(편집자 주).

(사진=이유미)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제목부터 마음에 들었다. 영화를 보고나니, 친구들과 한바탕 수다를 떨고 용기를 얻은 기분이다. 재치 있지만 가볍지 않게 비혼 여성들의 고민이 담겨져 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비혼 여성이라면 누구나 고민할 법한 질문에 직면하고 각자 답을 찾아간다.

마이짱은 유능한 회사원이지만 직장에서 상사에게 치이고 후배들 뒤치다꺼리하느라 고달프다. 사귀는 사람은 유부남이라 언제나 사정을 봐줘야 하고 기다려야 해서 지친다. 직장도 연인도 고민거리만 잔뜩 안겨주는지라 마이짱은 돌파구를 찾는다. 남들처럼 안정된 삶을 가지면 지금의 불안함도 갑갑함도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다.

마이짱이 직면한 질문은 ‘결혼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다. 하지만 영화는 마이짱을 통해, 결혼한다고 해서 삶의 무게가 덜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형태를 달리할 뿐이라는 걸 보여준다.

마이짱의 친구인 수짱은 레스토랑에서 일한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것을 좋아하고 직장에서도 인정받아 점장을 제안받기도 한다. 수짱이 직면한 질문은 ‘결혼하지 않으면 고립되지 않을까?’이다. 노후에 누가 돌봐줄지, 만날 사람이 없어 고립되지 않을까 불안하다. 먼 나중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퇴근길 골목에서 불쑥불쑥 느껴지는 쓸쓸함에 마음이 허전하다보니 더 걱정이다.

그렇지만 수짱은 너무 앞서 생각해서 미리 겁먹지 말자고 다짐한다. 새로 개발할 메뉴를 생각하고, 동료들과 즐거움을 생각하고,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을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그리고 충만하게 살기로 결심한다.

우리는 어쩌면 ‘결혼을 안 해서 외롭고 힘든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마이짱과 수짱의 질문과 선택에서처럼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외로움에서 벗어난다거나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거나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영화는 결혼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다고, 그러니까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얼핏 들으면 ‘결혼이 뭐 대수냐!’라는 당연한 얘기인 듯한데, 당연하지 못한 이유는 결혼제도가 가지는 강력한 물질성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눠서 특수한 형태의 가족은 장려하고 나머지는 억압되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는 핵가족 형태가 아닌 가족 형태나 비혼 가구는 특이하거나 이상한 사람들로 취급된다. 사회복지제도 역시 핵가족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1인 가구나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 동거인은 복지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유대관계 역시 대단히 가족 중심적이다.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배타적인 유대관계를 형성하거나, 가족끼리의 모임이 주를 이루다보니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커뮤니티에서 소외되기도 한다. 수짱의 우려가 괜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결혼제도의 물질성은 가족이 자본주의적 노동력 재생산 기능을 담당하는 것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자본주의적 가족은 남성이 생계를 부양하고 여성이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는 성별분업을 이상화하는 특성을 가진다.

하지만, 아빠가 돈 벌고 엄마가 살림한다는 정식은 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한 것이지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만고불변의 법칙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남성농민에게 처자식을 먹여 살리라고 하면 깜짝 놀랄 것이다. 아내와 자녀들이 밭 메고 나무해오고 누에치고 길쌈하지 않는다면 굶어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가족은 남성이 버는 돈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을 이상화하지만, 물론 현실은 다르다. 대다수 가족은 남성이 혼자 벌어서 가족을 부양할 수 없고, 여성도 함께 돈을 벌지만 가사와 양육은 여전히 여성의 몫이다. 그럼에도 여성은 반찬값 버는 정도로 취급당하고 돈도 벌고 살림도 해야 하는 이중부담에 시달리게 된다.

오늘날 소위 정상가족은 점점 해체되고 있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변해서기도 하고, 경제위기와 청년실업으로 가족을 꾸리고 유지하기 어려워서기도 하다. 앞으로 가족의 모습은 지금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방향은 여성의 이중부담과 남성의 생계부양으로 지탱되던 가족의 모습과 다르길 바란다.

아이를 키우고 노인을 돌보는 일을 여성이나 개인들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고, 남성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남녀가 각자 스스로를 부양하는 방향의 변화라면, 갈수록 결혼이 대수가 아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