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암 투병 끝에 작고한 서양화가 장호 화백을 추모하는 유작전이 열린다.
고인이 활동했던 서울민미협 노동미술위원회, 전북민미협, 햇살회, 홍익대 동문 등으로 구성된 장호1주기추모준비위원회(대표 이기홍)는 9일, 유가족과 위원회가 장 화백의 작품으로 확인한 전체 유작(고인이 생전에 남긴 작품) 1170여 점을 13~17일 5일 동안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전시한다고 밝혔다.
전시 작품은 아크릴과 유화 50~100호 100여점, 책그림 800여점, 신문연재그림 120여점, 드로잉 150여점 등 모두 1170여점이다. 전 작품이 전시되는 만큼, 고인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최초의 전시회라는 의미도 있다.
유작전 제목은 ‘장호1주기 추모전-반달로 떠서’다. 생전에 달을 좋아해 ‘반달’이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한 고인을 그리워하는 의미를 담았다.
전북민미협 진창윤 화백은 “장호 형은 치열한 예술가의 삶을 살다가 죽어 하늘에 달로 떠 있다”며 “자신이 못 다 이룬 예술을 후배들이 채워주길 그곳에서 지켜보고 있다”며 추모전 제목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
추모준비위는 장호 화백에 대해 “시대의 아픔을 거부하지 않은 화가였다”며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나 공장, 미술강사, 책그림으로 삶을 가로질러 오면서도 마른 나무토막 같은 이 땅에 한 줄기 불꽃을 피워 올렸다”고 평가했다.

(중독, 100x50, 장지에 먹/아크릴, 2004)
추모준비위는 또 이번 유작전의 취지에 대해 “90년대 민중미술화가, 학원강사, 2005년부터 일러스트 작업 등 치열하게 살다 간 장호 화가의 예술세계를 정리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책그림으로 성공한 그의 작품을 평가하는 의미도 있다”고 덧붙였다.
추모준비위 진창윤 화백은 “장 화백 자신이 병상에서 자신의 미술작업에 대해 술회한 내용을 포함해 고인의 아내가 정리한 내용을 전시회 도록에 참고자료로 담았다”고 밝혔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장 화백의 초기 작업은 1980년대 중후반 통일에 대한 감상적 인식을 바탕으로 했다. 이와 달리 서울민미협 노동미술위원회에서 활동하던 1990년대 전반기에는 지하철과 불깡통 등 구체적 사회현실을 자유로운 색감과 붓 터치로 표현한다. 유화와 목판화에서 아크릴로의 변화도 눈에 띈다.

(해와달, 305x144, 캔버스에 아크릴릭, 1996)

(구렁이 같은 새벽구름, 100x50, 캔버스에 아크릴릭, 1997)
1990년대 중반 이후 작가는 민화와 장승, 전통 탈 연구를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 동서양을 아우르고자 시도한다. 동시에 그 이전까지의 인상주의적 기법과 표현주의적 인물작업을 상대화한다.
하지만 작가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두 작업을 통일하고 승화시킨다. 그 스스로 “전통미술에서 민화와 초상화는 나 개인 작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것의 과정 속에 인물 변형과 사실적 표현을 동시에 표현하여 구성의 조화를 시도한다”고 말한다.
특히 2000년부터 한국인물작가회를 통해 동서양의 기법을 넘나들며 인물작업에 집중하는데 주로 아내와 딸, 지인을 모델 삼아 작업한다. 이 시기 작가는 외부적 영향보다 내면적 현실에 기반하는 동시에, 한국 전통기법의 연구를 통해 새로운 시도와 표현으로 밀도 있는 영혼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시기에 작가는 캔버스천뿐 아니라 비단, 한지 등을 재료로 사용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표현해나간다.
한편 2005~2013년은 책그림의 시기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을 시작으로 ‘삼국유사’, ‘나비잠’, ‘달은 어디에 떠있나?’ 등을 통해 한지작업으로 전통적 동양화기법을 빌어와 깊이 있는 그림세계를 만들어낸다.

(나비잠, 47x27, 종이에 먹/아크릴릭, 2006)
예를 들어, 『강아지』 속 인물 표현은 참으로 따뜻하고 정감 깊은 한국적 정서를 느끼게 하며, 『세종대왕』, 『광야의 별 이육사』, 『호찌민』 등에선 역사와 삶 속 인물을 그림으로 재조명하고 재해석한다. 800여점에 이르는 책그림엔 그가 줄곧 민중미술을 통해 추구해왔던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우리 역사와 인간에 대한 사랑이 그대로 묻어난다.
장 화백은 길을 가다 마주치는 아이조차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면서 험한 세상을 어떻게 버텨낼지 걱정하곤 했을 정도로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으로 유명하다. 장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는 이번 첫 유작전은 그의 책 그림을 감상하고 평가해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접동새, 44x30, 종이에 연필/아크릴릭, 2013)
장호 화백은 1962년 김제 출신으로 1990년대 초 서울민족미술인협회 노동미술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노동미술전, 조국의 산하전, 민중미술15년전 등에 참가했다. 이후 경기도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미술학원 강사로 후배 양성에도 힘썼다.
2005년부터는 동화책 원화를 그리기 시작해 2009년 『달은 어디에 떠 있나?』로 이탈리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다. 2010년에는 동화 『강아지』 삽화로 한국아동도서전 일러스트레이터 부문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한겨레 연재소설 『소금』(박범신 작)의 삽화를 맡아 작업하기도 했다.
2009년부터 전주시 서서학동 산성마을에서 생활했으며, 암으로 투병하다 지난해 6월 23일 52세의 젊은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