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드론전쟁:굿킬’(Good kill)은 무인항공기에 의한 전쟁의 실상을 고발한다.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의 주연으로 유명한 에단 호크가 분한 주인공 ‘토마스 이건’은 3,000 시간 비행에, 파병 6회, 200번의 전투 기록을 가진 베테랑 공군 조종사다. 하지만 지금은 무인 드론을 조종하여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건 소령이 수행하는 전쟁은 매우 손쉽고 간편하다.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몇 천 km 떨어진 라스베가스의 한 기지에서 게임하듯이 조종간(조이스틱?)을 붙잡고 드론을 날려 테러리스트들을 감시하고, 미사일을 쏴 사살한다. 설사 드론이 격추되거나 사고를 일으키더라도 조종사 본인은 아무런 위험부담이 없다. 눈앞에서 사람을 죽인다는 윤리적 죄책감도 가질 필요가 없다. 이건 소령의 상관은 ‘이건 게임이 아니라’고 주의를 주지만, 드론 전쟁은 PC방에서 흔히 하는 FPS게임(총 쏘기 게임!)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영화의 한 장면. 드론을 조종하는 모습.
우리가 배운 전쟁이라는 것은 비참하고, 잔혹한, 심각한 무엇이었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주는 드론전쟁의 현실은 일상과 다를 바 없다. 주인공은 낮에는 버튼 몇 개 눌러주고, 저녁에는 퇴근하여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가운데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명령을 받아 단지 시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수상하다는 이유로 대량 사살하게 되면서, 이건 소령은 자신의 임무에 회의를 품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은폐하는 드론전쟁

▲‘드론전쟁:굿킬’ 영화에 등장한 미국의 무인폭격기 MQ-9 리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사용되었다.
사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주인공이 근무한 기지는 실제로 라스베가스에서 80km 떨어진 크리치 공군기지이며, 등장한 무인항공기도 MQ-9 리퍼라는 실존하는 전투용 드론이다. 또한 CIA가 주도한 무인폭격기 부대는 드론 운영교리를 특정 위험인물만을 찾아서 타격하는 ‘개인 폭격’(personality strike)에서 수상한 조짐만 보이면 타격하는 ‘징후 폭격’(signature strike)으로 바꾸면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낳기도 했다.
군사용 무인폭격기에 의존한 전쟁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의도와 일치한다. 오바마는 2008년 대선 당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전임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자신은 ‘평화주의자’라 주장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부시가 이라크/아프간 전쟁에서 무수한 미군 희생자를 내면서 국내의 반대여론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드론을 활용한 전쟁으로 미국인의 생명 손실을 최소화해서 자신이 수행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부시의 그것과 달리 ‘깨끗한 전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드론전쟁은 아프간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드론 때문에 삽시간에 목숨을 잃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전쟁이었다. CIA가 지휘한 무인폭격기 부대는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인접한 파키스탄에서 최소 2,400명을 사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런던의 비영리 언론단체 ‘영국탐사보도국(BIJ)’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 중 민간인 사망자 수는 최소 407명에서 최대 928명으로 16~25%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한 같은 단체에서 2014년에 새롭게 낸 보고서에서는 신원이 확인된 704명의 사망자 중 미국이 목표로 한 알카에다 조직원은 84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3.5%에 불과했다.
남중국해로 향하는 드론전쟁
드론을 활용한 전쟁은 은밀하게 작전을 수행하고픈 군사전략가와 대중의 손가락질을 피하고 싶은 정치인들의 눈길을 더욱 끌고 있다. 이제 미국은 중동만이 아닌 아시아에도 군사용 드론을 도입하고자 한다. 지난 4월,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남중국해에서의 잠수 드론 전략을 공개했다. 그 잠재적 타겟이 중국임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남중국해는 중국 남쪽에 위치한 중국 본토와 대만-베트남-인도네시아 사이의 해역을 일컫는다. 무수히 많은 조그만 섬들을 둘러싸고 중국과 인접국가들 간의 영토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석유,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전 세계 무역 물동량의 50%가 이 수역을 지나는 등 그 가치가 날로 주목을 받고 있는 해역이다. 미국은 이 해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막고자 한다. 때문에 남중국해에는 미국의 군함이 수시로 드나들고, 중국 역시 미국 군함을 견제하기 위해 다수의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군사적으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곳이 바로 남중국해다.
이런 상황에서 드론 잠수함이 투입되면 군사적 대립 양상은 확연하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군사대국 미국이라지만, 중국의 촘촘한 감시망을 뚫고 자유롭게 군사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드론이라면 가능하다. 우선, 드론 잠수함은 유인 잠수함에 비해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이에 따라 운용에 필요한 전력량도 줄일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유인잠수함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얕은 해역이나 적국의 항구시설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더 오랜 시간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크기가 작고 전력량도 적기 때문에 유인 잠수함보다 소음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잠수함 감지 시스템이 해저에서 발생하는 음파를 감지하는 소나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드론 잠수함은 중국의 감시체계가 잘 갖춰진 곳(적진 한가운데!)에서도 은밀하게 활동할 수 있다.
게다가 비용 또한 훨씬 저렴하다.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 따르면 함정드론 ‘시 헌터’는 하루 운용비가 일반 구축함의 70만 달러보다 대폭 줄어든 1만5000∼2만 달러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함정을 직접 운용하는 군인들을 육성하고 생활하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그 비용차이는 더 크게 벌어진다. 또한 앞서 드론 폭격기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보여준 것처럼, 아군의 인명 피해 부담도 크게 덜 수 있다.

▲(위에서부터) 미국의 리머스 600 무인잠수함, 시 헌터 무인 함정. 아래는 중국이 개발 중인 무인잠수함 하이옌. 출처는 http://www.navaldrones.com/
군비경쟁과 충돌가능성을 높이는 군사용 드론
그러나 중국 역시도 군사용 드론의 이점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군함이나 지상의 미사일 발사기지가 미국의 드론 잠수함의 정찰과 공격에 쉽게 노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은 소형의 잠수함 탐지 드론인 ‘하이옌’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의 드론 전력 강화가 중국의 군사용 드론 개발을 촉진시키고 있고, 결국 남중국해에서 양국의 군사적 긴장을 더욱 드높이는 효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드론 투입이 본격화되면 남중국해에서 국지적 충돌 가능성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아군의 인명 피해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훨씬 덜하기 때문에, 군사 행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오바마가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면서도 ‘깨끗한 전쟁’이라 홍보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더욱 손쉽게 군사적 활동에 나설 수 있게 되고, 그에 따라 정치적 갈등과 국지적 충돌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무인 전쟁의 미래
군사용 드론의 기술 개발과 군사적 활용법에 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전쟁터에서 드론 활동에 대한 법적, 윤리적 고민이 상대적으로 진척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지난 2009년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은 미국이 무인기의 공격목표를 설정하는 법적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국제법을 위반한 무차별 학살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 정부는 ‘적법한 절차’를 따랐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고 해서 깨끗하고 평화적인 전쟁이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중동에서 드론을 활용한 폭격은 대중의 주목을 훨씬 덜 받은 채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들었고 전쟁의 참상을 은폐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아시아 지역에서 군비경쟁과 충돌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드론을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영화나 게임이 아닌 현실이 된 이상, 그것이 정말로 정당한지, 그리고 그것이 평화로운 세계를 위한 길인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에 와있다.
※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한 이준혁님의 칼럼을 정기적으로 게재합니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