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 경영계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여러 항목 중에서도 일차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집중했고, 특히 공공기관에서부터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 결과, 모든 공공기관에서 내년부터 임금피크제가 시행된다.
지난 6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공기업 30곳, 준정부기관 86곳, 기타기관 197곳 등 모든 공공기관 313곳이 지난 12월 3일까지 임금피크제 도입을 완료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을 조정하고 일정 기간의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로 통상 정년에 가까운 노동자들에게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의 일정 부분을 삭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정부는 기업들이 삭감한 임금으로 청년들을 신규 고용하도록 해 청년고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저성장과 높은 청년실업률, 고령화 문제 등에 종합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1998년에 공무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교원 정년 단축으로 백지화된 바 있다.
이후 2003년 7월에 신용보증기금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2013년에는 60세 정년연장법(정식명칭=‘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2016년 1월 1일부터 공기업, 공공기관 및 300인 이상 고용기업의 정년이 60세로 연장(지방자치단체와 300인 미만 고용기업은 2017년부터 적용)됨에 따라 ‘청년고용 문제 해결’을 명분으로 하는 임금피크제가 가속화됐다.

(▲기획재정부가 핵심 개혁과제의 하나로 설정하고 있는 임금피크제의 주요 내용. 기획재정부 인터넷사이트 인용.)
정부는 지난 5월부터 공공기관을 우선 타깃으로 삼아 본격 도입을 추진했고 7개월 만에 모든 공공기관에서 시행이라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일부 노조를 중심으로 강력한 반발이 있었고,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임금피크제에 반대하는 노동계의 시각을 정리해 보자.
먼저, 정부와 경영계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임금피크제가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의 임금-고용 유연화를 확대하는 방아쇠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은 여러 차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금피크제는 “임시방편”이라며 “임금체계를 하루 빨리 직무·성과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 공성식 국장은 “임금피크제는 결국 나이가 들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임금을 적게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사회적으로 확산할 것”이라며 “이는 임금이 개별 생산성에 따라 차등 지급돼야 한다는 ‘성과주의 임금체계’에 대한 정당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노조가 정부와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금융권 성과주의 문화 확산을 경계하면서,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성과주의 임금체계 개편에 맞서 총력대응을 결의했다.
노조 김문호 위원장은 “정부가 4대 개혁 중 금융개혁을 성과주의 임금체계 개편으로 확정하고 본격화하고 있다”며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자율로 추진하기로 한 노사정 합의내용을 정면으로 파기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금융공기업에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먼저 확산시키겠다고 하고 있는데, 이미 금융공기업에는 성과연봉제가 많이 도입돼 있다”며 “민간은행이 주요 타깃”이라고 내다봤다.
성과주의 임금체계 개편은 곧 노조 와해작전이자 저성과자 퇴출제를 상시화하겠다는 노림수라는 게 노조의 시각이다. 노동강도 강화와 노동시간 연장을 부추길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임금피크제가 정부의 주장대로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을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들이 있다.
고전적인 임금기금설은 임금피크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등장한다. 임금기금설에 따르면 ‘사회에서 임금으로 지급되는 기금의 규모가 일정하고 개별 노동자의 임금은 이 기금을 노동자 총 수로 나눈 값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정부의 주장처럼 임금피크제는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는 기제가 될 것이다. 전체 임금기금 총량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일부 노동자의 임금이 감소한다면 그만큼을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임금은 고전적 임금기금설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현실에는 다양한 임금결정방식이 존재하지만, 고전적 임금기금설과 같은 임금결정방식은 찾기 힘들다.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김수현 연구원은 “특히 지금과 같이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경제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있지 않은 시점에서 임금피크제는 정부가 주장하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 정책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할 수 있다”며 “수요가 확대되고 있지 않고, 또 언제 경제적 충격이 올지 모를 상황에서 임금 비용의 감소는 새로운 고용으로 이어지기보다는 비용 절감 방안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기존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기업의 정규직 신규 채용을 가로막는 원인이라 주장한다. 공성식 국장은 “이 때문에 임금피크제는 정규직 노동자를 궁지에 몰아넣기 딱 좋은 의제”라고 분석한다.
노동자운동연구소 한지원 연구실장은 “임금피크제는 ‘일반해고’와 함께, 대기업 정규직도 저임금 고용불안에 동참하라는 사업주들의 요구인 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