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갈등이 정부와 시·도교육청 간 “돈이 있다-없다” 논쟁으로 번졌다. 시·도교육청이 올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만큼의 재정 여력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두고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의 재정 여건이 어렵다는 건 인정하지만 누리과정 예산을 못 세울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교육부는 특히 올해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이 지난해 대비 1조8천억 늘었고, 여기에 학교신설 관련 지출소요 1조원과 교원 명예퇴직 관련 재정소요도 4천억 줄었다면서 충분히 누리과정 예산 편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시·도교육청은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 책임을 중앙정부에 돌릴 게 아니라 이월액과 불용액, 불요불급한 사업의 축소 등 재정효율화 노력에 나서라는 주장이다. 지자체 전출금 조기 확보를 위한 노력도 함께 하자고 강조한다.
교육부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사이 서울, 광주, 전남, 경기, 세종, 강원, 전북 등 7개 교육청의 2016년 본예산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지난달 11일 언론에 공개했다.
교육부 분석에 따르면 전북교육청은 자체 재원 623억으로 우선 9개월 치를 편성하고, 정부 지원금 145억과 지자체 전입금 증가분 178억으로 나머지 3개월 치 편성이 가능하다.
교육부가 밝힌 전북교육청 자체 재원 623억은 2016년 교부금 보전 지방채 승인액 중 미편성액 435억과 순세계 잉여금 124억, 시설비 세출예산 과다 편성액 64억을 합한 것이다.
전북교육청은 이에 대해 곧바로 보도자료를 배포해, 교육부의 분석은 전북교육청의 예산 현실에 맞지 않는 ‘숫자놀음’일 뿐이라고 반발했다.
전북교육청은 올해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은 691억 전액을 편성했지만, 어린이집 누리과정에 드는 예산 833억은 전혀 편성하지 않았다.
전북교육청은 먼저, 교육부도 밝힌 것처럼 도교육청 ‘자체 재원’ 623억 가운데 69.8%인 435억이 지방채여서, 결국 교육청이 빚을 내 누리과정 예산을 몇 개월 치라도 우선 편성하란 얘기 아니냐고 반발했다.
전북교육청은 순세계 잉여금 124억을 누리과정 예산으로 쓸 수 있다는 교육부 분석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시급한 교육환경개선사업비에 우선 지원할 돈이지 누리예산으로 돌려써도 될 여윳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 교육환경개선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2671억인데 본예산 편성액은 968억 뿐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전북교육청은 또 학교신설 교부액 중 120%이상 초과 편성한 3개 학교에서 64억을 추가 확보할 수 있다는 교육부 분석에 대해서도, 전북교육청의 학급당 학생 수와 물가인상률, 법령 강화에 따른 추가 소요비용을 반영하지 않은 분석이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지원할 예정인 국고 예비비 145억에 대해서도 전북교육청은 ‘위법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목적예비비는 말 그대로 특별한 목적(열악한 학교시설 개선)에 따라 잡아놓은 예비비인데, 누리과정에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달 초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누리과정 예산 관련 기자회견에서 “국고 예비비를 지원하는 뜻은 시·도교육청이 예비비를 사용함으로써 생기는 여유 재정으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라는 뜻”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한편 전북교육청이 지방세 추가 전입 62억, 감사원 학교용지부담금 처분액 및 미전입액 116억 등 총 178억을 추가 확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전북교육청은 ‘지자체 전입금 178억’은 실체가 분명치 않다고 주장한다. 행정 절차상 조기 전출이 쉽지 않고, 학교용지부담금 역시 누리과정 예산에 써도 되는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용지부담금은 지자체와 ‘셈법’에 이견이 있어 추가 전입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강조한다.
교육부는 전북교육청의 반발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교육청이 ‘교육부 시·도교육청 본예산 분석 엉터리’라는 제목으로 1월 11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대해서는 곧바로 13쪽짜리 보도자료를 통해 상세히 재반박했다. 전북교육청과 겹치는 대목이 많다.
교육부는 특히 경기교육청이 누리과정 예산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소홀히 하면서, 관행적이고 비효율적인 예산 편성을 반복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15일 현재까지 17개 시·도교육청 중 유일하게 전북교육청만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다.
서울은 시의회가 4.8개월 치를 긴급 편성했고, 경기는 도에서 2개월 치 910억을 준예산으로 집행했다. 광주는 시 예산에서 3개월 치를, 강원은 도 예산에서 1~2개월 운영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대구, 대전, 울산 등 나머지 교육청은 추경 예산으로 올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또는 부분 편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전남의 경우, 지난 3일 도의회가 5개월 치 누리과정 예산 397억을 통과시켰다. 전남도의회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다가 이날 긴급임시회를 소집한 뒤 본회의에서 의결했다.
이에 대해 전교조 전남지부는 “전남교육청이 유초중고 예산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으로 전용한 셈”이라며, 의회가 예산을 승인한 것은 도교육청이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라고 교육청을 규탄했다.
교육예산 분배를 둘러싼 집단적 이해관계가 누리과정 예산 갈등의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시도 전입금 추가분과 학교용지 부담금은 학생들의 교육활동에 사용되는 부분이라는 전북교육청의 주장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한편 정부와 시·도교육청 사이의 근본적 시각 차이가 지방채에 대한 관점에서 드러난다.
교육부는 지방채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나 시도전입금 못지않게 시·도교육청의 주요한 가용 재원이라고 본다. 다만, 지방채 증가로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경우 중장기적 해결방안을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함께 모색하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전북교육청은 재정 건전성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특히 누리과정 예산 편성을 목적으로 지방채를 발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막대한 지방채를 학교 신·증설에 사용해온(전체 지방채의 90%이상) 전북교육청으로선 누리과정을 위한 지방채 발행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