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홍순천)
과거는 부질없이 지나가고, 앞날은 대책 없이 다가오는 것일까?
벌써 입추(立秋)가 지났다. 소란스런 천둥, 번개와 함께 지나간 어제의 소나기가 아침 안개로 세상을 포옹하고 있다. 해가 뜨기 전, 마당에 서면 많은 생각이 지나간다. 탕탕탕탕..... 새벽을 깨우는 경운기와, 모자라는 잠을 챙기는 산꿩의 기지개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어디로부터 이곳까지 흘러들어 온 생명인지를 가늠해 본다. 객지에 둥지를 튼 이방인의 동병상련이다. 새벽안개 속에 고요한 들판은 계절을 거슬러 봄으로 가고 있는 중일까?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열린 새벽부터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어제 밤에 나를 만났던 초승달은 오늘 밤, 조금 더 큰 몸피로 밤을 밝히겠다. 더불어 만나던 수많은 별은 언제부터 나를 기다려 왔던 것일까? 각자 다른 시각에 출발했지만 코앞에서 동시에 현현한 별빛의 신비로움이 몸을 전율케 한다. 각자 다른 시각에, 각자 다른 장소에서라도 같은 생각을 한다면 이미 하나의 몸피를 공유한 것이 아닐까?
눈썹 밑에 자리 잡은 눈으로만 세상을 볼 때가 많다. 몸은 대개 생존을 위해서만 반응하기 때문에 대책 없이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든든하고 확실한 보험을 들지 않으면 불안해서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댄다. 다가올 미래를 추억 할 수는 없을까? 지나간 날을 상상 할 수는 없을까? 이미 우리는 복잡하게 얽힌 시간과 물질의 혼돈 속에 살고 있다. 그 혼돈은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내가 혼돈스럽기 때문이다. 과거는 그저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상상 할 미래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나간 역사는 부끄러워도 어쩔 수 없다.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귀한 가르침을 준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가 어느 공간인지도 모를 허공 속으로 갑작스레 날아간 활자와 더불어, 생각이 날아가 버릴 때의 허망함이란.... 받아 볼 사람이 있는 곳으로 발송되는 편지는 보낸 이를 더 설레게 하지만, 대상 없이 날아간 마음은 살을 저미는 찬바람이 되어 돌아온다. 하지만 그 생각은 우주에 기록되었다가, 내 몸으로 다시 돌아 올 것이 분명하다. 눈앞에 있는 것만 보는 힘세고 미련한 닭은 삼복더위를 넘기지 못한다. 몸으로만 대응하는 무지는 매의 눈을 피해 갈 수 없다. 자연의 섭리다. 내년에는 마당가에 닭이라도 몇 마리 키워야겠다. 그리운 이들이 찾아오면 몇 마리 때려잡아 몸을 채우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내년에는 닭 잡는 일이 많아지겠다. 새벽부터 그리운 마음을 끄적인다. 내게 돌아 올 당신의 마음이 더욱 그리워서다. 며칠 뒤, 유성우(流星雨)로 반짝이며 달려오실 당신을 기다리며 벌써부터 마음이 급하다.
새벽안개 속에서 세상을 상상해 본다. 이미 알고 있지만, 안개로만 가려도 신비롭고 아득한 비밀이 가득하다. 화살촉처럼 찌르는 한 낮의 햇살에 안개는 사라지겠다. 신비롭지만 비열한 안개의 역설이다. 티끌 하나도 감출 수 없는 지난날을 상상하며 조금 더 아름다운 미래를 추억한다. 벌써 가을이다. 추분(秋分) 지나면 밤낮이 공평해 지리라는 기대감으로 새벽부터 당신이 더욱 그립다.
향기로 기억되는 당신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오겠다. 설레는 아침이다.

▲봉곡마을 필자의 집 마당의 장독대.
[글쓴이 홍순천은]
1961년 경기도 양주 산. 건축을 전공했지만 글쓰고 책 만드는 일과 환경운동에 몰입하다가 서울을 탈출했다. 늦장가 들어 딸 둘을 낳고 잠시 사는 재미에 빠졌지만 도시를 벗어났다. 아이들을 푸른꿈고등학교(무주 소재 대안 고등학교)에 보내고 진안 산골에 남아 텃밭을 가꾸고 있다. 이제는 산골에 살며 바라보는 세상과, 아이들 얘기를 해보고 싶은 꽃중년이다.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 스트로베일하우스’ 출간.
- (전)푸른꿈고등학교 학부모회장.
-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녹색평론’을 끊지 못하는 소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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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홍순천의 ‘땅 다지기’]는 격주 목요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