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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5-12 09:57:27

어느 청년의 고백


... 편집부 (2015-03-09 09: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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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아닌. 실제 이야기입니다.-

청년은 식탁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그의 시선은 술잔에 고정되어 있었고, 흔들림은 없었다. 여자아이처럼 곱상하게 생긴 청년의 얼굴이 등불에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청년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는 귀하게 자랐습니다. 적어도 저의 아버지 기준에서 보면 너무 귀하게 자랐습니다. 제 위로 누나가 둘 있고, 저는 삼 대 독자입니다. 친할머니께서는 누나들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습니다. 셋이 함께 친가에 가면 할머니께서는 저만 바라보시고 누나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해병대를 전역하셨고, 월남전에서 다치셔서 장애가 있으십니다. 국가유공자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직업을 따로 가져보신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동네 일을 도와주거나 장사하셔서 생활을 유지했습니다. 물론 국가에서 생활 보조금이 나오기는 합니다. 학비도 무료지원이 됩니다. 그렇다고 넉넉하게 지원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귀하게 자랐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귀한 자식은 엄하게 키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열한 살, 열두 살 무렵이었습니다. 그때 분명 제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잘못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밖에 없습니다. 누나에게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청년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잠깐 천장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소주를 한잔 마시고, 청년이 술잔을 비우기를 기다렸다. 마음이 조금은 진정 되었는지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조용한 움직임으로 청년의 눈빛을 슬쩍 훔쳐보았다. 그때 느꼈던 공포가 되살아난 듯 손을 몇 번인가 쥐었다가 다시 펴는 것이 보였다.
잔을 받은 청년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얼마나 큰 사고를 저질렀는지는 아무리 기억하려 애를 써도 기억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죽음의 공포까지 느껴야 할 정도로 큰 죄가 무엇인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집에는 아주 깊은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우물 밖에 높이는 어른 허리쯤이었습니다. 그래도 위험하다며 뚜껑을 덮어놓으셨습니다. 우물 깊이는 두레박을 던지면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 물에 닿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우물에 저는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다리를 밧줄에 묶어 거꾸로 매달아 놓으셨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얼마나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오기가 생겨서 소리도 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금만 있으면 엄마가 꺼내 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멀리서 엄마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렇게 한다고 버릇이 잡힐까요? 너무 약한 것 아니에요?’ 그렀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동조하고 있었습니다. 그 벌이 부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다고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처음 몇 분은 견딜만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피가 머리 쪽으로 쏠렸고, 금방이라도 눈에서 피가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눈이 튀어나오려고 했고, 머리가 도끼로 맞은 것처럼 아팠습니다. 깊은 우물이 무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눈과 귀, 코, 입에서 쏟아지는 피가 이 깊은 우물을 가득 채울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죽을 수도 있다는, 아니 죽어야 한다는 공포감도 크게 느낄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열한 살이었습니다. 몸을 움직였습니다. 조금 움직이면 벽에 손이라도 짚고 머리를 조금 세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다리도 감각이 없었고 몸은 제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점점 의식은 흐려졌고 그다음 기억은 없습니다. 눈을 떴을 때 제 방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옆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가 몸을 일으키려 할 때 머리가 깨어지듯 아팠습니다. 그래서 그냥 다시 누웠습니다. 그리고 누나 말을 들으니 며칠째 잠만 잤다고 했습니다. 가끔 엄마는 죽은 것 아니냐며 놀라셔서 흔들어 깨우곤 했습니다.”

청년은 술 한 잔을 벌컥 마시며 고개를 들어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미 두 볼을 타고 조용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난 다시 잔을 채우며 청년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은 깊게 숨을 들이켜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소주 한 잔을 마시며 그 우물 속에 있었던 열한 살짜리 사내아이를 떠올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가 마주했을 죽음의 공포는 어린아이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으리라는 것을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청년이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그의 눈시울은 붉었고, 콧잔등이 붉었다. 울음을 삼켰으리라. 차마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지만, 보이고 싶지 않았으리라 짐작할 뿐이었다.

“그렇게 며칠 자고 일어났는데 집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누나들은 방학이었지만, 학교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어머니는 동네 일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옆집 아저씨와 나누는 목소리만 집 안 구석구석을 호통치고 있었습니다. 내 방에서 인기척이 나자 아버지께서 방문을 열었습니다. 나는 놀라 몸을 움츠렸습니다. 아버지는 등을 두 번 정도 두들기더니 딱 한마디 하셨습니다.
‘밥 먹고 자라.’

밥통을 열었더니 하얀 쌀밥이 가득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먹지 못했던 탓인지 그 밥을 모두 다 먹어버렸습니다. 단 한 톨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반찬은 따로 필요치 않았습니다. 전 귀하게 자라서 김치를 먹지 못했습니다. 생선도 엄마가 발라주지 않으면 가시 때문에 먹지 못 했습니다. 제가 꺼낸 반찬은 멸치 볶음 하나였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고 나니 다시 졸렸습니다. 그래서 제 방에 들어가 미친 듯이 또 잠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며칠씩 잠에 빠진 첫 번째 경험이었습니다.


(그림 = 임솔빈)

그렇게 다시 며칠 자고 일어났습니다. 제가 눈을 떴을 때는 밤이었습니다. 부엌에서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가족들의 목소리였습니다. 웃음소리도 들렸습니다. 다행히 아버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없어도 가족의 웃음소리는 크고 맑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고 대문을 발길질로 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은 분명 아버지의 발길질이었습니다. 일단 저는 제방의 불을 껐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 방문부터 열고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불도 켜지 않은 채 저의 멱살을 잡고 일으키더니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내새끼가 우물에 좀 매달려 있었다고 며칠씩 잠만 퍼 자빠져 자? 이런 약한 새끼를 어디다 써먹어! 젠장 사내새끼냐, 계집애냐? 정신 못 차려? 눈 똑바로 못 떠?’
엄마가 오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주먹에 작은 체구의 어머니는 방구석으로 떠밀렸습니다. 아버지가 취하신 날은 누나들은 언제나 뒷문으로 도망칩니다. 엄마는 누나들부터 피신시키고 제방으로 오신 것입니다. 몇 살 때부터인지 기억은 없지만, 아버지가 술 드시고 오시는 날은 맞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었습니다.”

나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들고 있던 소주를 벌컥 마셨다. 청년은 아버지 폭력에 관한 이야기할 때는 이골이 난 듯 무덤덤했다. 내 잔을 채우며 청년은 깊게 한숨을 내리 쉬었다.
“맞으면서 아버지한테 반항 안 해봤어?”
“했습니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저도 강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때리느냐고 술 취한 아버지께 소리를 질렀습니다. 처음엔 아버지께서 당황하시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손으로만 때리시던 분이 어디선가 몽둥이를 들고 오셨습니다. 저도 처음 보는 몽둥이였습니다. 그날 밤 저는 아버지의 분이 풀릴 때까지 맞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때리는 방법도 잘 아시는 것인지 그렇게 맞아도 뼈가 부러지거나 어딘가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맞을 때 고통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멍은 며칠이 지나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맞은 후 병원에 가본 적도 없습니다. 며칠간 저는 잤습니다. 잠들어 버리면 약해빠진 저를 비관하지 않고 아픔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한 번 잠들면 며칠 동안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땐 일주일 동안 잠들었다가 배고파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미친 거야! 어떻게 아이들을 그렇게 때릴 수가 있어? 혹시 새 아버지이셔?”
“아닙니다. 친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술 드시면 왜 주먹을 휘두르는지 이유는 알아?”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께 맞고 자랐고 어릴 때는 정말 싫었는데, 싫다고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를 닮아가는 자신을 본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가끔 방송에서 폭력은 대물림된다는 말을 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물림이라는 말은 무서운 것이야. 네 아들한테까지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잖아? 근데 너도 술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하지? 지난번 벌금 사건도 그렇고.”
“네, 그래서 요즘엔 취하지 않을 만큼만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취기가 오른다 싶으면 일단 엄마한테 전화하고 집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평온한 지금은 그럴 수 있다지만 어떤 난관에 부딪히는 상황에서도 절제할 수 있을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엔 아버지가 무섭다기보다 저 자신이 조금 더 무섭습니다. 제 마음을 제가 제어할 수 없다는 자체가 무섭고 술 취한 후 내가 했던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듣게 됩니다.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지난번에 옆에 앉아서 술 드시던 어른을 두들겨 패고 매일 목숨 걸고 배달 아르바이트해서 벌었던 돈을 벌금으로 모두 바쳤습니다. 그런 제가 참 미웠습니다. 저를 쌀자루에 처넣고 입구를 누구도 풀지 못하게 꽉 묶어서 쓰레기장이 버린 아버지보다 지금의 제가 더 싫었습니다.”
“뭐라고? 쓰레기장에 버려? 무슨… 그런….”

청년은 다시 술 한 잔을 벌컥 마셨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눈망울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야기 꺼내는 것을 조금 망설이는 것 같았다. 나는 청년의 손을 잡아주었다. 청년은 방긋 웃었다. 그리고 연거푸 한 잔 더 마시더니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쓰레기였습니다. 이틀을 쓰레기로 버려졌습니다. 저는 집이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도 싫었고 귀한 자식은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아버지의 철학은 더 싫었습니다. 그래서 가출했습니다. 가출하던 날 아침. 엄마의 얼굴과 마주치자 가슴이 정말 칼로 베는 듯 가슴 아래쪽부터 위쪽까지 통증을 느꼈습니다. 제가 나가고 나면 엄마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려야 합니다. 제가 없는 날은 항상 엄마가 대상이었으니까요. 엄마가 맞으실까 봐 일부러 집에 있는 날이 사실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도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날 가출을 결심하고 어머니의 통장에서 꽤 많은 돈을 인출해서 도망쳤습니다. 한 달 이상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돌아다니다가 마땅한 곳이 없어서 친구들이 있는 집 근처로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친구들 눈에 띄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할아버지 대부터 고향에서 살았던 토박이입니다. 아버지 또래는 대부분 아버지 친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돌아온 지 3일 만에 아버지께 잡혀서 집으로 끌려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 옷을 모두 벗기고 쌀자루에 처넣었습니다. 그리고 입구를 동여매고 저를 쓰레기장에 버렸습니다. 우리 마을은 논 한가운데 있는 외딴 마을입니다. 쓰레기 수거차는 일주일에 한 번밖에 오지 않습니다. 저는 이틀 동안 음식물 썩는 냄새와 강아지들 끙끙거림, 도둑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저는 쓰레기였습니다. 저 자신도 쓰레기였고 아버지에게도 쓰레기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 저는 숨소리마저 죽였습니다. 그냥 그대로 숨이 멎어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대로 아버지가 우물에 매달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물에 매달면 몸을 움직여서 밧줄이 헐거워질 때까지 몸부림치면 저는 그 우물 속으로 빠질 것이고 깊은 우물이라서 그 누구도 저를 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첫날의 오기였습니다.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환절기였기에 으슬으슬 추웠습니다. 몸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발 감각은 없었고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좁은 쌀자루에 웅크리고 앉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물에 매달렸을 때와 전혀 다른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이렇게 있다가 쓰레기 수거차가 와서 쓰레기 매립장으로 옮겨지면 저는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아니 그 밤 어둠이 더 무서웠습니다. 그 무엇도 볼 수 없고 움직일 수 없고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어둠이 무서웠습니다. 벌레 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그 밤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청년은 이야기를 멈추고 눈물을 닦아냈다. 그 밤의 공포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청년은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눈물을 훔쳐야 했다. 그 밤의 공포가 나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청년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추위에 무서웠고 어둠이 무서웠고 배고픔이 무서웠습니다. 한 번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불러주지 않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습니다. 만약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어른이 되어서 아버지께 똑같이 하겠노라는 다짐도 했습니다. 나도 어른이 되면 나보다 약한 사람 때려주고 제가 당한 것 그대로 갚아주겠노라 밤새 다짐했습니다. 그 희망 하나가 저를 공포에서 건져주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서야 누군가 부스럭거리며 저를 찾았습니다. 누나 목소리였습니다. 울고 있었습니다. 누나는 제가 아버지에게 잡혀 집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몰랐답니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술 취한 아버지께서 동생이 쓰레기장에 버려진 것도 모르고 잘 처먹는다는 말을 듣고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큰 누나는 쌀자루에서 저를 꺼내면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작은 누나의 손에는 옷이 있었습니다. 너무 창피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마음뿐이었습니다. 몸은 손가락 하나도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발가벗은 모습은 누나들에게 창피했습니다. 아니 항상 중학생만 되면 누나들 지켜주겠다던 제가 비참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는 자체가 창피함이었습니다. 간신히 일어설 수 있게 되자 팬티만 입고 내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온몸에 쓰레기 냄새가 배여 있었습니다. 잠들 수도 없었습니다. 일단 욕실에 가서 씻고 아버지가 계시는 거실을 당당하게 걸어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밥통을 열어 가득 차 있는 밥을 모조리 먹었습니다. 난 다시 내일 쓰레기장에 버려질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밥 먹을 수 있을 때 배가 터지도록 먹어야 했습니다. 그 이후로 쓰레기가 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더 커서 어른이 되면 아버지에게 그대로 갚아 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왜 가출했는지 이야기라도 하지 그랬어?”
“아버지는 왜 그랬냐는 질문은 지금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으십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왜 그랬느냐는 질문은 단 한 번도 받아본 적 없고 아버지께 변명해 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니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 여기 왔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11시까지 들어가겠다고 해놓고 제가 새벽 늦게까지 술 마시고 들어왔을 때, 저는 아버지나 어머니께 당연히 혼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집이 멀어서 어쩔 수 없이 여기로 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일찍 다녀라.’ 하셨고, 어머니께서는 ‘취했으니 들어가 자라. 낼 이야기하자’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해장국을 먹고 난 후 어머니께서 ‘왜 늦었어?’ 라고 질문하셨을 때 저는 거짓말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태훈이가 ‘그냥 술 먹다가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마셨어요. 잘못 했어요.’라고 말했을 때 놀랐습니다. 저희 엄마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머리라도 쥐어박고 소리를 지르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이제 성인이다. 네가 스스로 결정할 나이인데, 엄마가 봤을 때는 잘못된 판단인 것 같다. 술은 적당히 마셔라.’ 그 말씀으로 끝내셨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맞는 것보다 말이 더 무섭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네가 스스로 결정할 나이라는 어머니의 그 말씀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이성이 살아 있을 때까지만 술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매번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가끔 어머니께서 툭툭 던지는 농담이나 장난스러운 말씀들이 저는 낯설었습니다. 엄마랑 이런 장난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태훈이가 하는 것 그대로 저희 엄마한테 ‘엄마,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저희 엄마는 전화하셨습니다. 그리고 ‘지랄한다. 취했으면 자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계속 반복했습니다. 지금은 엄마도 문자로 답하십니다. ‘그래, 나도 사랑한다. 아들’이라는 답장을 받는데 1년 남짓 걸렸습니다. 태훈이가 군 복무하는 동안 저는 엄마와 함께 있었습니다. 20살이 넘어서야 엄마에게 제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 엄마는 대화를 피하셨습니다. ‘다 그렇게 사는 거지’라는 말만 하셨습니다. 많은 대화는 아니지만, 이제 엄마랑 이야기가 아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습니다. 어릴 때, 상처받았던 이야기를 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관해 이야기하면 엄마는 눈물을 흘리십니다. 처음으로 엄마가 저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엄마도 제 편을 들어주십니다. 아버지의 부당한 폭력에 화도 내십니다. 집에 들어가고 싶진 않지만, 엄마를 만나기 위해 엄마 가게는 가끔 갑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꼭 이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청년은 방긋 웃었다. 항상 말이 없고 다소곳한 처자처럼 얌전하기만 했던 청년은 자기 생각을 어른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수줍은 듯 고개를 돌리며 웃는 청년의 모습에서 나약하기만 한 소년을 보는 것 같았다.

술을 꽤 마신 탓인지 청년은 작은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나는 아직 여운이 남아 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이야기 듣는 것만으로도 아팠다. 사랑받으며 자랐어도 모자랄 그 나이에 맞아야 했고 쓰레기로 버려져야 했고 죽음의 공포와 맞서야 했던 청년이 이제 폭력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내가 그 청년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내가 어떤 말을 한다 하더라도 그 청년이 맞섰던 삶을 보상해주지 못할 것이고 상처 또한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가끔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술친구를 해주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청년의 고백을 들으며 마음 뿌듯하기보다 명치끝이 아프기만 하다. 이 아픔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마시는 한 잔의 술이 심장의 상처를 소독하는 모양이다. 쓰라림이 오랫동안 멈추지 않은 것을 보면.
내일 아침엔 해장국을 끓여야겠다.

[작가 약력]

전남 나주 출생
전북 군산 거주
1995년~99년 소설창작모임 운영
2003년 수필집 [누룽지와 꺼먹고무신] 출간
2004년 월간 시사문단 시 등단
2004년 계간 대한문학세계 소설 등단
2011년 시집 [여백] 출간
2015년 현재
(사)창작문학예술인협의회 이사
계간 대한문학세계 심사위원
대한 문예대학 강사
대한 시낭송가협회원
웹디자이너
홈페이지 : 설연화의 문학공간 (http://sichenji.com)

※ 설연화 작가의 [사고뭉치 엄마의 괴짜 교육법]을 연재 중입니다. 매주 월요일 새로운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