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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5-07-17 16:34:16

멸종위기동물에 비춘 인류의 현실


... 문수현 (2017-03-30 02:5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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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작가 엄수현(사진)의 두 번째 개인전 ‘우리 모두의 기억’전이 지난 3월 23일부터 4월 5일까지 전주 진북동 우진문화공간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엄수현은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동물들을 모든 그림에 등장시켰다. 얼핏 보면 행복해하는 모습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괴된 서식환경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모습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작품 중 하나는 ‘무제’다. 지구온난화로 녹아내리는 얼음, 비쩍 말라 뼈가 드러난 북극곰을 그린 대작이다. 파스텔 계통의 배경은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지만, 그렇게 해서 작가가 관객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는 고통이다.

다른 작품들도 그렇다. 전시회 제목이기도 한 ‘우리 모두의 기억’ 연작은 푸른바다거북을 그렸다. 여기서도 의인화 기법을 사용해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샹들리에 물그림자가 비치는 바다 속에 바다거북들이 행복한 결혼식과 피로연을 치른다.

하지만 이 역시 역설이다. 연작 중 작품 ‘웨딩마술’에서 마술사는 플라스틱 컵을 쓰고 입에서는 투명한 비닐을 뽑아낸다. ‘피로연’에 모인 거북은 밧줄 넥타이를 맸고, 그물에 걸렀던 몸은 온전한 모양이 아니다. 비닐을 예복으로 걸친 신혼부부 바다거북의 아래 해저에는 폐타이어와 유리조각 등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가득하다. 동물들의 참혹한 현실은 인간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차갑게 드러낸다.


▲우리 모두의 기억-웨딩마술, 112.1×193.9cm,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화, 2017


▲우리 모두의 기억-결혼식, 162.2×97.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화, 2017

‘우리 모두의 기억’ 연작 가운데 북극곰 시리즈 역시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의 참혹한 실상을 표현했다. ‘부케를 받아랏’에는 북극곰과 회색곰이 신부와 신랑으로 의인화돼 있다. 신부 친구들과 신랑 친구들로 여러 동물들이 등장한다. 작가가 현실감을 더하기 위해 그려 넣은 낮달 아래 동물들이 행복한 축제를 즐긴다.

하지만 주의 깊은 관객이라면 그 이상의 것을 읽어야 한다. 북극의 기온이 오르자 육지로 내려온 북극곰이 회색곰을 만나 돌연변이를 낳은 실제 사건이 이 작품의 소재다.


▲우리 모두의 기억-부케를 받아랏(부분), 112.1×193.9cm,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화, 2017

또 다른 연작 ‘달아 높이도 솟았구나!’에는 벌목으로 사라져가는 동물들을 묘사했다.

이번 전시작 속에는 개코원숭이, 다람쥐원숭이, 레서팬더, 시파카 여우원숭이, 나무늘보, 나무캥거루, 미어켓, 하프물범, 북극여우, 황제펭귄은 물론 한국에도 서식하는 수달, 해달, 라쿤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이 등장한다.


▲달아 높이도 솟았구나2, 53.0×33.4cm,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화, 2017

지난해 전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엄 작가는 대학 4학년 재학 중이던 지난 2015년에 첫 개인전 ‘행복해 보이니?’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멸종위기 야생동물 그림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첫 개인전에서 엄수현은 작품 ‘진실’에 대한 작가노트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동물들이 사라져간다. 누군가에게는 밝고 아름다운 모습처럼 보이지만 동물들의 눈은 슬픔을 말하고 있다. 순수하고 밝은 표정 속에 숨어있는 그들의 고통의 순간을 눈동자를 통해 표현했다”고 적었다.

당시 개인전에서 선보인 주제작품 중 하나는 ‘해달튀김’이다. 기름바다에 떠 있는 해달을 그렸다. 대학 1학년 때는 비둘기 그림만 그렸다는 평화주의자 엄수현의 분노가 작품제목에서 읽힌다.

그에 비하면 이번 전시에선 작품제목들도 은유를 통해 부드러워진 셈이지만, 화면의 배경처리 방법도 달라졌다. 첫 개인전 땐 유화물감으로 배경을 그렸는데 이번에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파스텔 톤의 아크릴물감으로 배경을 ‘밀었다.’ 작가는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져 완성도를 높일 방안을 찾다가 아크릴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엄 작가는 지난해에는 우진문화공간이 주최한 신예작가 8인 초대전에 참여했다. 역시 멸종당해가는 야생동물들을 그렸다.

엄 작가를 신예작가초대전에 추천한 이광철 전북대 미술학과 교수는 “엄수현은 인간의 시선으로 자연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시선으로 인간과 교감하는 단초를 제공하고자 노력한다”면서 “작가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을 관조하지 않고 그 안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그림을 통해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것’이라고 답한다”고 적었다. 또 “생존을 걸고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만이 살아남는다”며 격려했다.


▲무제(부분), 162.2×390.9cm, 캔버스에 아크릴릭, 유화, 2017

김선희 우진문화재단 이사장은 엄 작가에 대해 “북극곰의 생태를 표현한 대작은 정말 순수하고 처연하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아직 새내기인데도 치밀하고도 치열한 붓질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번 개인전은 이 놀라운 신인이 지난 1년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라고 칭찬했다.

엄수현은 “앞으로 멸종위기동물을 한 곳에 더 많이 넣어서 더 큰 작품으로 그리고 싶다. 멸종위기동물 연작으로 10년은 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또 “작가로서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엄 작가는 현재 전북대 대학원 미술학과에 재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