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서 줄이기는 교육계의 화두 중 하나다. 교무실과 행정실을 막론하고 학교에서 공문서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지속돼왔다.
제1기 직선교육감이 출범한 직후인 2011년 전북교육청은 관련 태스크포스 팀까지 출범시켰다. 김승환 교육감은 “혁신적으로 교사 잡무를 없애겠다”고 공약했고, ‘교사잡무 제로 구현을 위한 제도 개선과 정비’를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은 노력에 보답하지 않았다. 일선 학교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공문서 감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사이 오히려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교원의 행정업무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 감축 노력에도 불구하고 공문서는 꾸준히 늘어 지난 2012년에 비해 2014년에 오히려 6.3%나 늘었다. 전북도의회 양용모 교육위원장 발표자료.)
실제로 전북 도내 전체 학교의 공문서 건수는 지난 2012년 총 888만4857건에서 2013년 926만3009건으로 4.1% 증가했고, 2014년엔 948만1285건으로 2012년 대비 6.3% 증가하는 등 점진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11월 전북지역 교원 41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원 행정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행정업무가 경감됐다고 생각하는 교원은 29.3%에 그쳤고, 부정적인 응답이 34.7%로 나타났다.
전북도의회 양용모 교육위원장은 16일 의회 세미나실에서 ‘학교업무 정상화를 위한 공문서 감축 토론회’를 열었다. 각계에서 약 30명이 참여했다.
교육위원회 황현 부위원장과 명식 의원 등이 참석했고, 도교육청에선 이승일 행정과장, 김형택 학교교육과장, 이현규 총무과장, 박성현 행정관리담당 등이 참석했다. 집행부도 이 주제를 두고선 의회와 갈등하지 않는 모습이다.
전교조 전북지부 김재균 정책실장과 전북교총 소병권 정책실장은 마주앉아 상대방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교사업무 경감이라는 과제에 있어서 별다른 의견차는 없었던 셈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교원 업무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느는 걸까.
전북교육청이 초중고 9개 학교를 표본으로 도내 각급 학교의 공문서 접수 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9개 학교에서 1년간 접수한 공문 수는 총 5490건(1일 평균 학교당 22건)이었고, 그 중 대외기관의 문서는 919건으로 16.7%였던 반면, 대내기관 사이의 공문이 4570건(83.3%)으로 압도적인 비중을 나타냈다. 결국 도교육청이 넘쳐나는 공문의 ‘숙주’ 가운데 하나라는 얘기다. 여기에 전체 공문서의 5할이 교육부가 일선에 하달하는 공문이다.
또한 지난해에 9개 학교의 등록문서는 총 10만5642건이었는데, 그 가운데 생산문서가 5만6236건(53.2%)으로 접수문서 비율을 압도했다. 학교로 들어오는 공문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전북교육청 이승일 행정과장은 ‘공문서 감축 추진 계획’ 문서를 통해, 2016년 말에 공문서를 10% 감축하고 2019년에는 3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들고 나왔다. 하지만 6개월 뒤면 정년퇴직인 행정과장의 그 같은 청사진을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 학교업무 최적화를 위해 공문서를 줄여야 한다는 데는 모두 공감했지만, 그 방안에 대해서는 더 머리를 맞대야 할 상황이다. 전북도의회 양용모 교육위원장이 관련 조례의 제정을 위해 전문가 토론회를 주선했다.)
토론자로 나선 전북교육청 지방공무원노조 김영근 사무총장은 “2011년 도교육청이 공문서 감축계획을 내놓을 당시부터 신뢰 못했다”며 “공문서를 분산시키는 방식은 한계가 뚜렷하고 공문서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그와 관련해서 “도교육청 조직이 비대하다”며 “인력을 줄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대신 교육지원청에 행정업무 지원 인력을 보강하라는 주장이다.
전교조 전북지부 김재균 정책실장도 개별 학교의 공문서 생산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처방을 내놨다. 그러기 위해선 과감하게 불이익이나 인센티브를 줘서 모두가 동참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북교총 소병권 정책실장도 토론에 나섰다. 소 실장은 도교육청에서 개별 학교에 이르기까지 일몰사업을 비롯한 기존의 사업을 과감하게 구조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서는 참석자들도 대체로 공감했다.
전북교육청 김형택 학교교육과장은 교육이 권력의 입김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원인),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자율성이 제도적으로 정착·보장돼야 한다(처방)는 원론적이면서 다분히 비현실적인 분석을 내놨다.
이날 토론회에서 공문서 증가 문제가 구조적이라는 데는 모두 공감했지만, 구조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는 못했다. 공문서 감축. 모두 다 공감하지만 안 풀리는 문제라는 점도 확인한 자리였다.
양용모 교육위원장은 “관련 조례를 제정하기 위한 전문가 토론회로 마련한 자리였다”며 “조례안을 만들어놓고 서너 차례 더 토론하겠다”고 밝혔다. 서두르지 않고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학교마다 과거에 비해 많은 예산이 배정되고 이를 교사 개개인이 담당해 처리하고 있는 만큼, 교사의 공문서 처리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개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