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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국정교과서 정책 유감


... 편집부 (2015-09-14 01:12:53)

최근 중국의 항일 건승절 70주년 중국군 열병식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사실 2013년 열병식에 비해 약간 식상한 느낌도 있었지만 여전히 세계의 눈과 귀를 모으기엔 충분했다.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절도 있는 걸음걸이에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다.

중장년층들은 그 장면을 보면서 과거 70년대 여의도광장에서 거행된 국군의 날 행사를 그렸을지도 모른다. 당시 국군은 지금보다 경제상황은 열악했지만 중국군보다 훨씬 군기가 있고 각이 잡혀 있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도 저렇게 하나의 목표만을 입력받은 인공지능(AI)의 인간들처럼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한 방향으로 움직였으면 하는 꿈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최근 여당은 정말 그런 생각을 했던가 보다. 하나로 통일된 모습을 보인 중국 군대의 피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부러움이 아마 역사교과서 국정화 주장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역사에 대한 기본 식견이 아직 부족해서 발생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2000년에 편찬됐던 마지막 국정 국사교과서의 첫머리에 있는 역사학습의 목적과 의미에서 진정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다소 지루할 수는 있겠지만 교과서의 본문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다른 어떠한 주장보다도 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그대로 인용하겠다.

“역사라는 말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 ‘조사되어 기록된 과거’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history as past)’와 ‘기록으로서의 역사(history as historiography)’라는 두 측면이 있는 것이다. 전자가 객관적 의미의 역사라면, 후자는 주관적 의미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객관적 사실, 즉 시간적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모든 과거 사건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란 바닷가의 모래알과 같이 수많은 과거 사건들의 집합체가 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역사가가 이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역사가의 가치관과 같은 주관적 요소가 개입하게 되므로 주관적 의미의 역사라고 하며, 이 경우 역사라는 말은 기록된 자료 또는 역사서와 같은 의미가 된다.

이상의 내용이 마지막 국정 국사교과서 Ⅰ.한국사의 바른 이해, 1.역사학습의 목적에 기술된 것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일반적 생각과 달리 역사는 과거 사실의 객관적 나열이 아니라 역사가의 주관적 기록을 나타낸다. 역사는 당연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단선적인 객관적 역사서술이 가능하다면 역사학은 존재할 수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 단원에서는 국정교과서가 얼마나 역사학습에 방해가 되는 것인지를 명백하게 밝히고 있고, 이러한 역사학습의 목적에 맞게 마지막 국정교과서가 되었다.

이후 전개된 교과서 채택을 둘러싼 약간의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사회혼란을 우려하는 소리가 일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혼란은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역사학습의 중요성과 교과서 편찬의 필요성을 깨닫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선기능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검인정 교과서들에 대한 언론을 통한 사회적 검증은 대학 연구실에 머물던 주관적인 역사적 기술들이 새롭게 사회적 합의를 거친 다음 현대 사회에 적합한 역사적 DNA로 발전하는 소중한 통로가 되고 있다.

획일화된 한국사 교과서를 통한 통일적인 역사인식은 과거 60~70년대 산업사회에서는 통할 수도 있었다. 표준화 단계를 거친 제품들을 획일적인 분업을 통해 생산해내는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기에는 다양한 생각보다는 단순하고 통일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어야‘일치단결’을 통한 제품생산의 총력화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통일된 지식의 암기가 아니라 다양한 의견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통한 학력신장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복합적으로 다변화된 현대사회의 문제해결을 위한 당연한 결과이며 이러한 교육목표에서 한국사 과목 또한 벗어날 수가 없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국정교과서 주장은 과거 산업사회의 개발독재시대로 회귀하자는 논리에 불과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또한 본인들이 원하는 주관적인 기록들이 교과서에 수록되지 못하거나 또 많이 채택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합의에 대한 도전이며, 자칫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일 수도 있다.